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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movie

당신의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입니까, 『화양연화』

by FC 200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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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감독 왕가위 (2000 / 프랑스, 홍콩)
출연 양조위, 장만옥, 소병림, 반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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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한 현악기의 선율 위를 걷는 중년의 어느 두 남녀. 어떠한 격정도 없이 담담하게 펼쳐내는 담담하지 않은 이야기.

영어 제목인 In the mood for love 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1960년 대의 로맨스를 분위기 있게 그려낸다. 신사같은 외모의 양조위와 완연한 자색을 뽐내는 장만옥. 화려한 치파오와 틀어올린 헤어스타일은 장만옥의 화려한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제법 번지르르하게 말끔히 빗어넘긴 헤어스타일은 양조위의 부드러운 매력에 수줍음을 곁들인다. 스쳐지나가는 순간들과 함께.

영화는 시종일관 시계바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사실 나는 왕가위의 영화는 아마도 처음이라, 그의 연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알고 있는 바가 없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내내 시계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이 시계는 어느 방향에서 봐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시계는 이들의 만남이 언제라도 본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게 아닐까, 생각중이지만...

이별의 연습을 하고, 외도하는 남편을 질책하는 연습을 하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는 장만옥과 싱가폴로 떠나는 양조위의 모습은 서글퍼야하는 장면임에도 그 소극적인 사랑의 담담함 때문인지 크게 슬프지 않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서로의 부족함의 빈자리는 그리움으로 승화되어 가느다란 여운을 남긴다. 함께 한 시간을 앙코르 와트에 묻은 채. 그리고 영화는 전반에 깔리는 첼로 선율과 옛 음악들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양조위장만옥만 존재하는 것처럼. 정작 외도를 한 주인공인 그들의 배우자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 것도, 화양연화 내부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건 이 둘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맥락의 연출일 뿐이다.

분위기에 취하고 아름다운 두 배우에 취하고 왕가위의 연출에 취하고 음악에 취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는 소녀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법을 아는 감독이다.

지극한 사견이지만 사면초가에 처해있는 홍콩영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왕가위 타입의 영화나, 아니면 무간도 식의 철저한 홍콩식 느와르여야할 것 같다. 어중띈 코미디나 할리우드의 뒤를 쫓는 식의 액션은 그저 쌓아둔 기반을 갉아먹는데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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