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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movie

명장 이순신의 거북선없는 이야기, 『명량』

by FC 201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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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

 
8.2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14-07-30
글쓴이 평점  

 

 

명량은 무겁지만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다. 잔인하지 않으나 실감나고, 고증이 완벽하지 못할 지언정 있을법한 현실이며,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진부하지 않다. 파죽지세로 500만을 넘긴 명량의 원동력은 단지 입소문과 이순신이라는 콘텐츠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사람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짓밟힘의 역사에 대한 반감과 국가적 위기의 극복에는 항상 다수의 백성이 있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노를 젓는 민간 백성들, 임진왜란 극복의 한 축이 되었던 승병, 그리고 스스로를 내던진 영웅. 할리우드식 영웅이 초능력이나 재력, 과학 같은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기반 혹은 '평범한'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면, 명량의 영웅은 그저 하나의 인간의 판단력과 의지 그리고 다수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다.

 

명량의 전반부는 전적으로 한 인물의 고뇌와 그 인물을 궁지로 몰아넣었을 때의 비장함을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구국성웅이 처한 극한의 상황, 국사책에 한산대첩에 이어 명량에서도 왜군을 격파하여 한양으로의 진입을 막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같은 한두줄짜리 문장으로 알고 있는 지식에 디테일을 부여했다. 탈영이 줄을 잇고, 실낱같은 희망이 될 수 있었던 육군마저 도와주지 못한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에서, 이순신이 죽은자들의 환영과 만나며 배신을 당하는 장면은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를 극한의 지경까지 몰아세우는 전반부 위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명량에는 이순신 하면 당연하게 떠올리는 거북선이 없고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옅은 갈색의 12척의 판옥선만이 존재했다. 반면 330척의 일본 수군의 배는 조선의 판옥선보다 배는 단단하고 강력해보이는 진한 갈색이다. 일본의 복색과 군영은 화려하며 장대하지만, 조선의 복색과 군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난의 역사처럼 친근하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실화는 힘을 얻는다. 명량이 고증대로 갔든 아니든 그 고증의 문제는 명량의 관객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명량해전을 재현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나의 울분을 풀어주는 통쾌함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절정에서 맞이하는 감동은 더 커진다. 명량의 후반부 자기편조차 두려워 돕지 않는 외골수의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일본군을 섬멸해가는 이순신의 전술과 용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픔의 역사를 배워왔고 강대국에 치여온 울분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의 메시지가 '백성의 힘'이라는 다소 진부하고 작위적일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을지라도 개의치 않을 수 있다. 나라를 구해낸 것은 결국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라는 공감대. 일반 병사들보다 승병과 백성의 씬이 유난히도 돋보였던 영화를 떠올린다면 웰메이드 상업영화인 명량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비장한 묵직함을 이토록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최민식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앞으로도 멋진 연기 쭉 보고 싶고 스크린에서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후반부의 대규모 해상전투씬은 CG티도 안나고 아주 말끔하게 잘 만들어졌다. 머리 위에서 조감하는 듯한 부감앵글과 느린 롱테이크씬, 영화의 비장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배경음악, 감독의 섬세한 연출 또한 매우 만족스러웠다. 특히 대장선이 회오리에 휩쓸릴 때, 화포가 배 위를 굴러다니다가 쓰러진 병사의 손을 내리쳐서 비명을 지르는 씬이나 피범벅이 된 노젓는 손 같은 씬은 영화의 디테일을 보이는데 한 몫 했다. 다시 극장을 찾게 되는 영화는 대개 아주 재미있거나 뒷맛이 깔끔한 영화인데 명량은 4대 6정도로 또 보고 싶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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