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능력으로 극을 살릴 수 있을까. 여름대작 4편 중 하나인 해적을 보면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해적의 이야기인데 산적단이 중심이 되고 코미디 영화인데 마무리는 광해같은 훈계조로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고 남은 것은 유해진의 코믹연기뿐. 12세 관람가만 믿고 가야할 영화.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니 어쩐지 오리지널 캐리비안의 해적에 미안해진다.
해적은 영화의 1/3이 지날 때까지 심심하고 평면적이다. 산적단으로 들어가는 유해진의 씬이 나오면서부터 코믹요소가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유해진의 애드립인가 싶을 만큼 딱 그 배우가 나오는 장면만 재미있다. 김남길의 연기는 봐줄만 했고 손예진의 연기는 어설펐다. 손예진은 현대극에서 하던 연기를 사극에서도 똑같이 했고, 생각 외로 자주 등장하던 설리는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사극판인 양 아쉬웠다. 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 설리는 어두운 캐릭터를 하는 편이 본인의 부족한 연기력을 커버할 수 있는 길이라 본다. 손예진은 멜로.
해적에서는 광해도 보이고 캐리비안의 해적도 보이고 전래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도 보인다. 그 말은 다수의 흥행할만한 요소를 다 집어넣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지루한 걸보면 이야기의 구조가 너무 진부하고 유해진을 제외한 캐릭터의 특색이 없다시피한 떼주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손예진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이야기를 유치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12세의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 영화라면 납득하겠지만, 글쎄 그 장면에서 1995년 KBS방영 애니메이션 '돌고래 요정 티코'가 떠오르는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해적은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여기서 찔끔, 저기서 찔끔, 흥행영화의 공식을 베껴오는 것은 한국영화의 고질적 문제가 되었지만 관객들에게 시나리오 상의 반전이나 긴장감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말이 많았던 CG는 게임 그래픽 같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롯데가 어린이용 영화를 150억 들여서 만들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뻔한 시나리오 덕분에 어린이영화 이상의 평점을 주기 어렵다.
'시청각보고서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편의 만화같은 풋풋한 감성, 『늑대소년』 (0) | 2014.08.04 |
---|---|
명장 이순신의 거북선없는 이야기, 『명량』 (2) | 2014.08.04 |
올 여름 최대 기대작 군도 미리보기 (0) | 2014.06.10 |
고도 경주의, 『경주』 (0) | 2014.06.03 |
색계 들먹이지 마쎄요~, 딱 네이버 평점 수준의 저질영화, 『인간중독』 (0) | 2014.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