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회성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심지어 사회 교과서에도 실리는 이 일화는 다름 아닌 늑대인간의 이야기다. 늑대의 품에서 십여년 간 자란 늑대소녀 두 명이 인간 사회로 왔을 때의 부적응 현상. 하나는 늑대의 행동만을 따라하다가 죽었고 하나는 약 9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9년을 더 산 이 여자아이는 인간의 품에서 단어를 배우기도 했고 늑대의 울음소리를 그대로 내기도 했다. 어두운 곳을 잘 보거나 네발로 걷고 뛰는 양상을 보였고, 인간과의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인간의 사회성과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예다.
김씨표류기는 두 가지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 같은 동화같은 상상이고, 하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극히도 일반적인 인간 군상이다. 이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지면 김씨 표류기가 된다. 주인공인 남자 김씨(정재영 분)는 빚 독촉전화를 받으며 빡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30대 남성이다. 자살시도를 했지만 죽기는 커녕 한강의 밤섬에 표류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사람이다. 반면 여자 김씨(정려원 분)는 이마의 흉터 하나로 어두운 방 안에 처박혀 표류하는 히키코모리다. 현실에서는 시쳇말로 '폐인'같은 모습을 하고 살지만 온라인에서는 반짝 스타인, 디지털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한국 근대화의 살아있는 역사인 한강,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밤섬. 63빌딩이 보이고 밤이 되면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흐르는 한강물을 비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이 곳에서 가장 원시적인 삶이 시작된다. 남자 김씨가 도심 속 고대인의 삶에 적응해갈 때쯤,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의 접점이 생겨난다. 디지털 카메라의 앵글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우뚝 자리한 한 히키코모리와 멋지게 적응한 표류중인 남자를 매개하는 매개체다. 일방적인 관찰, 그리고 호기심. 여자 김씨가 남자 김씨에게 느낀 연민이 동질감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진정한 소통은 스스로의 의지에서 나온다. 마지막에 가서 영화는 사회로 복귀하게 되는 두 남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현실로의 복귀가 가능해진 상황임에도 두려움에 도망다니는 남자 김씨와 그런 김씨를 구하러 현실로 뛰쳐나가는 여자 김씨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찝찝함을 남긴다. 사회적이지 않은 여자 김씨와 사회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던 남자 김씨의 사회생활 적응기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소외되고 부딪히며 새로운 환경과 소통하고, 적응하려 부단히도 애를 쓰는 두 남녀. 그리고 어느 날 저녁에 만나 '힘들다'고 소주잔을 들고 푸념섞인 신세한탄을 한다. 김씨표류기는 어쩌면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것들의 부적응을 희화화함으로써, '제자리' 자체에 대한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