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은 대개 결혼이라는 법적인 제도를 통해 혹은 아이의 탄생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가족의 해체는 법적인 구속력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족은 별거, 동성애, 부모 혹은 자식의 일방적인 가족 버리기 등 너무나도 다양한 이유를 품에 안고 해체된다. 이철수는 사회복지학 사전에서 가족의 해체를 ‘가족집단이 이혼, 가출, 유기 등에 의해 가족구성원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가족구조가 붕괴되는 것’이라 말했다. 넓게는 결속감, 소속감 등의 파괴를 의미하고 좁게는 혼인관계가 파괴되거나 결손가족이 된다고 말한다. 즉, 가족이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불안정 혹은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가족의 해체라 표현한다는 것이다.
산타렐라 패밀리는 다양한 성향중에서도 한국에서는 유난히 특별하게 취급받는 동성애자들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마드리드에서 잘나가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요리사 막시는 가족의 해체와 화합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이미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로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죽어가는 ‘전처’와 ‘가족’이 나타난다. 막시는 자식들 앞에서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헌신, 책임, 내리사랑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아버지상과는 딴판이다. 가족의 탄생이 제대로 완성되기도 전에 해체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도 그에게 딴지를 걸지 않는다. 아들은 막시의 아버지에 대한 역할을 포기한 상태고, 딸도 그러려니 한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란 선사시대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생성된 사회적 현상이다. 보편적이라는 이야기다. 스페인이 아무리 동성결혼이 인정될 만큼 자유분방한 나라라지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만화에서 ‘싸질러 놨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할 것 아냐!’ 라고 외치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오버랩될 정도다. 그런 막시의 앞에 나타난 것이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출신인 또다른 동성애자 호라시오다. 호라시오는 막시에게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막시를 위해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재’탄생을 돕는다. 재미있는 것은 호라시오가 단지 가족의 재탄생을 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점이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의 일반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아버지, 아버지, 자식들의 구성원인데도 이 가족은 보통의 가족과 다르지 않다. 아무런 위화감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가족의 재탄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감독은 동성애를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붕괴된 가족구조를 완벽하게, 대안가족으로 부활시키면서 동성애에 대한 열린 시각을 보여준다. 가볍고 유쾌하게, 하지만 진중한 메시지를 ‘보여줌’으로써 동성애가 가족을 화합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감독은 이 유쾌함을 위해 유머러스한 대사와 가벼운 장면터치 외에도 한가지의 설정을 도입한다. 그것은 막시가 미슐랭가이드에 등재될만한 최상급레스토랑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좁게는 한 가정, 넓게는 국가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인 문제가 종종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의 설정은 애초에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차단을 의미한다. 산타렐라 패밀리가 시종일관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적당히 가볍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적당한 가벼움은 영화의 흐름에서 적어도 중산층 이상인 막시의 경제력이 무거울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주는 덕분이다.
게이에 대한 발랄한 상상. 퀴어영화가 무거울 필요는 없다. 어쩌면 동성애에 대한, 낯익은 무거운 느낌은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 무거운 면을 주로 접해서가 아닐까. 대안가족은 특별한 편견 없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산타렐라 패밀리는 그런 깔끔한 뒷맛을 준다. 따로 입가심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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