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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movie

행복의 전제는 패러독스?, 『슬럼독 밀리어네어』

by FC 200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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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감독 대니 보일 (2008 / 영국)
출연 데브 파텔, 프리다 핀토, 아닐 카푸르, 아유시 마헤시 케데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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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감정은 대개 두 가지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거나 전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물론 이 두 가지는 겹칠 수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전자의 이유로 신기한 감정을 들게 하는 영화다. 어라 하는 사이에 진행되는 이 영화는 일단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가난함의 상징인 슬럼과 부의 상징인 밀리어네어. 슬럼가를 비출 때나 긴장의 상황에서 나오는 경쾌한 음악. 퀴즈쇼에서 정답을 맞추면서 백만장자에 다가가는 자말의 현재와 슬럼가의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또다른 역설은 영화의 우연성에 있다. 주인공인 자말이 처했던 다소 괴로울 수 있었던 어린시절의 상황들이 백만장자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답을 주는 우연의 일치. 자말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존재들을 그때그때마다 시기 좋게 처치해준 형의 죽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말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역설적이다.

이 영화의 역설은 극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지만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기에 감동을 준다. 일상의 흔한 이야기였다면 감동받을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고 본다. 슬럼가에서 태어나 퀴즈쇼를 통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쉽고 - 사실 로또맞은거나 다름 없다. - 때마침 사랑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이들이 죽어나가 사랑하는 여인을 얻는 게 쉽다면 그 누구도 이러한 이야기에 감동받지 않을 것이다. 흔해 빠진 이야기에 감동받기에는 나 살기도 바쁘니까. 웬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연출이 아니라면 진부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줄줄 늘어놓는 것은 이만하고 한줄로 요약한다면 백만장자가 된 슬럼가 소년이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는 인생역전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역전 역설덩어리를 보면서도 만족스럽고, 무거워야하는 장면에서 무겁지 않아서 어두운 영화 특유의 찝찝함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역설의 중심에 전통색 짙은 인도 음악이 깔려있다는 건 이 영화에 감칠맛을 더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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