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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movie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살살 빨아먹는 영화, 『순정만화』

by FC 2008.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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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감독 류장하 (2008 / 한국)
출연 유지태, 이연희, 채정안, 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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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야기 하자면 이 영화는 서서히 녹는 얼음같은 영화다. 다들 이연희가 연기를 못해서 재미가 없다, 강인을 끼워팔기 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재미는 연기보다는 감독의 잔잔한 연출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풋풋한 강인의 대시를 상징하는 자전거, 자전거를 버리고 제대를 하면서 강인은 있는 그대로의 채정안을 품어안을 수 있는 남자가 된다. 그리고 채정안 역시 과거의 남자 대신 강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마지막에 유지태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이연희에게로의 적극적인 접근, 이전까지는 표현하지 못했던 좋아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산이나 저금통도 그렇다. 4개의 하늘색 우산은 각각 이들의 싹트는 사랑이고, 유지태가 준비한 2개의 저금통 역시 이연희가 준 우산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이연희가 준 2개의 우산은 유지태를 향한 이연희의 마음이라면, 유지태가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저금통은 유지태이연희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다.

채정안의 카메라도 비슷한 맥락이다. 채정안의 카메라는 과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잊지 못하는 남자와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전혀 다른 인물인 강인 사이의 망설임이기도 하다. 채정안은 카메라를 버림으로써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보인다. 그 카메라는 이연희에게 가는데, 신기한건 채정안이 버리려고 했던 이 카메라에 찍혔던 사진들이 순정만화의 커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다. 유지태가 에어컨 위에서 뒤늦게서야 발견한 사진, 그리고 채정안에게 전해달라던 채정안이 찍은 사진들이 바로 그렇다.

일관성 있는 잔잔한 흐름이야말로 이 영화 최대의 장점이지만, 반대로 이 영화는 위기나 절정이 없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 비교적 좋은 평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풋풋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소재들로 점철된 순수한 사랑의 시작. 누구에게나 시작은 설레는 일이고 가슴 벅찬 일이다. 아버지에게 편지로나마 마음을 전하던 꼬마와 좋아해요, 라고 말한 유지태는 마음을 완곡하게 전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를 부드럽게 녹아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봤으니 연기에 대해서 잠깐 평을 해본다. 먼저 사람들이 나무라는 이연희. 확실히 발음에는 문제가 있어보인다. 가끔 발음이 입안으로 먹혀들어가는 느낌의 단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었고, 연기에 자꾸 지적을 받는건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가 굵은 탓이 아닌가 싶다. 가끔 극중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말투가 튀어나온다. 이 부분은 이연희 자신이 모니터링 하면서 고쳐야할 부분인 것 같다.

유지태채정안 같은 경우는 딱히 지적할만한 점은 없다. 그냥저냥 무난하게 캐릭터를 소화한듯. 나는 왜 유지태를 보면 40대 어깨 축 처진 아버지의 자화상이 떠오르는걸까?

강인수영. 이 둘을 묶은 이유는 간명하다. 캐릭터 자체가 이 둘이 평소에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어떠한 위화감도 느낄 수 없었다는 점. 특히 수영같은 경우는 평소에 팬들에게 이야기할 때나 버라이어티에서 사용하는 말투와 거기서 보이는 성격이 영화속에서의 모습과 거의 일치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고 내가 수영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기에 그랬다는 이야기다. 강인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잠시나마 이 둘의 연기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려고 한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를 표현하는 점에 있어서는 일단 합격점을 주고 싶다. 영화속 캐릭터가 본인과 같건 같지 않건간에,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캐릭터에 잘 녹아나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인수영은 굳이 SM에서 이연희에 끼워팔기했다는 오명을 벗어도 될만한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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