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암울한 미래에 맞서는 인간의 이슈는 늘 문명과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받는 벌과 결국은 그것을 극복해내는 인간의 의지, 세계를 지키고 구하는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이다. 이 이슈는 오랜 기간 미국 블록버스터의 한 축을 이루어왔다. 인터스텔라 역시 그러한 할리우드식 문법을 따라간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러나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나 소행성 충돌 같은 SF 영화의 진부한 이슈 대신, 세계 각국의 정부와 경제체제가 붕괴된 미래. 황사로 뒤덮이고 병충해에 농작물이 멸종해가는 식량 위기의 시대를 가정한다. 정부는 당장 먹고 사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NASA와 같은 프로젝트에 더이상 투자를 하지 않으며, 모든 미래인의 눈앞에 닥친 과제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지구에 남는가 떠나는가. 떠나야한다면 어디로, 어떻게 그들을 데리고 갈 것인가. SF영화의 상상력은 대개 미지의 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외계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영화의 외계인은 미래의 인류다. 미래의 인류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시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인류가 자연재해로 인한 지구의 위기에서 멸종할 위기에 처한 것을 알았다. 따라서 과거의 조상(?)인류를 구하려고 웜홀을 만들어 다른 은하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놀란의 놀라운 우주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직 NASA 조종사 쿠퍼는 현재 농사꾼이다. 그의 아들과 딸은 호기심은 많지만 학교가 바라는 인재상은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과학적 호기심으로 가득차있고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많은 10대 아이들. 쿠퍼는 자식들의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으며, 과거 NASA 시절에 쓴 교과서를 딸과 함께 읽을 만큼 낭만적이다. 그런 쿠퍼에게 딸 머피는 방 안에 유령이 나타났다며 이상현상을 보여준다. 이상현상을 추적한 결과는 다름 아닌 NASA.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이 조직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NASA는 인류가 이주해서 살만한 행성을 웜홀 건너편의 은하계에서 3개 발견했다면서 쿠퍼에게 그 행성이 인류의 이주가 적합한지 가볼 것을 부탁한다. 자식을 살리고 싶다는 부성애. 재해에 맞서는 인간 사명을 위해 이별해야하는 가족 연인의 간절함 사명감vs개인은 늘 다루어져온 이슈다. 놀란의 전작 중 하나인 다크나이트에서도 개인으로서의 배트맨과 고담시를 지키는 존재로서의 배트맨의 고뇌는 영화의 주제를 만드는 중요한 이슈였다. 쿠러의 놀라운 우주여행은 자식들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놀란은 리얼리티를 위해 모래폭풍을 직접 만들고 옥수수밭을 일구기도 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놀란은 외계행성에 대한 선입견을 깬다. 물과 질소는 있으나 대양처럼 물만 있고,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쳐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 67시간의 밤과 67시간의 낮, 땅이 존재할 수 없는 추위, 암모니아로만 이루어져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얼음행성. 놀란이 구현해낸 거대한 파도는 그 어느 SF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연현상의 위대한 공포를 보여주기 완벽한 연출이었다. 이외에 토성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우주선이나 무중력의 공간에서 배우의 목소리 외에 모든 음향효과를 제거한 연출 또한 영화의 암울하고도 무거운 사명이 주는 느낌을 살리는데 매우 적합한 연출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정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년간 사랑받아온 콘텐츠다. 자연재해라는 거대하고도 불가항력적인 힘을 극복해내는 미개한 인간의 노력과, 한편으로는 그 인간 사이의 이해관계, 이기적인 생존 본능 같은 인간 본연의 특성에 관한 고찰 또한 놀란 영화의 재미나는 요소 중 하나다. 놀란은 자신의 작품에서 욕망, 생존본능, 영웅의 고뇌 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비슷한 애정을 담아 보여줘왔다. 악역일지라도 그의 행동이 일방적으로 비난받지 않도록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캐릭터에 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 또한 놀란 영화에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다.
쨌든 놀란이 영화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이성적인 고찰을 보여왔던 놀란의 영화에서 감성적인 결말을 보게 되어 조금 놀랍지만, 우주는 아직까지 우리의 이성과 과학지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우며 그간 과학에서 직관적인 우연들이 진화의 토대가 되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놀란의 선택은 다소 흔한 할리우드 영화 같았을지는 몰라도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사랑은 모든 것이며 그 사랑은 지구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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