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은 드라마에서 작품을 히트시키며 얻은 대중성에 비해 영화는 다소 마이너한 노선을 걷는 배우다. 일부러인지, 하필 고른 작품들이 대중성이 부족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송혜교나 하지원, 김명민처럼 드라마에서의 대중적 성공에 비해 영화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연기와 운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대중적으로 흥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병헌의 배우로서의 스타성이나 연기력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그는 충분히 훌륭한 배우고 매 작품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해마다 왕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는 점은 왕에 대한 대중의 환상과 그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알 수 없는 것, 잘 알지 못하는 것, 나의 시대가 아닌 것에 대한 허구가 있을 법한 상상과 결합했을 때 이야기는 대중을 끌어당길 힘을 가진다. 그런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사극이요, 시대극이다. 최근에는 상상력을 좀 더 가미한 퓨전사극과 타임슬립같은 현대와 과거를 결합한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것도 대중이 소구하는 허구적 진실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다.
사극의 배경은 과거이지만 사실 사극이 말하는 것은 21세기 우리의 이야기다. 주된 소재로 다루어지는 정치적 암투나 로맨스는 현대적 관점에서 이러했을 것이라고 상상한 결과물이거나 현대의 것과 꼭 닮았다. 다만 총이 칼로 바뀌고 멋드러진 수트가 한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광해는 왕이 된 광대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상을 제시한다.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간단하면서도 이상에 가까운 광대의 가치관은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잘 낳은 성군 하나가 수백년을 살찌운다. 그런 정치가에 대한 목마름이 노무현 신드롬을 낳았고 안철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광대가 왕노릇을 하던 시절, 가까이에 있던 이들이 광대를 살려보내는 것으로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있다. 뻔하지만 모두의 바람이 녹아있는 코드를 잡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이 된 남자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날, 영화는 또다른 이상을 그려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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