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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movie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by FC 201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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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식 영웅은 늘 그랬다. 악당의 도발에 맞서 혹은 악당을 저지하기 위해 얼굴도 잘생기고 만능 스포츠맨에 외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뒷배경마저도 빵빵한, 누가 봐도 영웅의 자질에 손색이 없는 남자. 영웅은 항상 고뇌하며 고독하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정의 실현의 사이에서. 그리고 항상 사회정의의 실현을 택한다. 영웅의 곁에 있는 어여쁜 여인은 언제나 나를 택하지 말고 세상을 구하라 말한다. 참으로 이타적이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쩌면 영웅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희생을 딛고 일어나 사회를 구하고 그 후에 개인의 행복을 얻는 권선징악의 결말은 할리우드식 영웅영화의 전형이다.

 

불을 얻기 전, 도구를 사용하기 전 인간은 나약한 존재였다.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상대에게 위협을 가할 강력한 이빨도 없다. 인간이 어느 강력한 동물들보다 집단생활과 협업에 능숙한 이유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환경에 노출되어있었던 탓이다. 하나의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도 어쩌면 나약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하나의 위대한 영웅을 필요로 할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하나의 영웅보다는 다수의 협력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작년인가 세상을 휩쓸었던 롱테일의 법칙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집단지성은 평범한 다수의 힘 또한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다수의 논리에서 출발한다.

 

배트맨의 정체는 웨인 그룹의 회장 브루스 웨인이다. 잘생긴 외모, 멋진 체격, 뛰어난 능력과 배경. 게다가 영웅이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을 정의로움과 희생정신까지, 웨인은 영웅이 될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웨인은 베인이라는 무지막지한 용병 캐릭터에게 막혀 고전한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다시 나섰지만 베인에게 무참히 깨지고, 주식 사기까지 당해서 재력과 배경까지 사라져버린 웨인에게 남은 것은 없다. 땅속 깊숙히 위치한 우물같은 지하감옥에서 둥그런 구멍으로 스며드는 햇빛만을 바라보며 버텨야한다. 절망은 희망이 있기에 더욱 고통스럽다는 베인의 말은 우물 밖으로 보이는 둥그런 하늘 만큼이나 현실적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슈퍼히어로 배트맨도 일개 사람처럼 '누구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는 다크나이트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문 대신 죽음을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지하감옥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것이므로. 어쩌면 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대포정신으로 무장한 의리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카멜레온 같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반인으로 재탄생한 웨인은 베인을 이기는데 성공한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미란다의 정체는 영화의 강력한 반전과 최종보스로 작동하지만, 때문에 영화의 끝은 제법 시시해진다. 배트맨의 희생을 통한 고담시의 구원.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결국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처럼 할리우드식 영웅을 만들고 떠났다.

 

고담시는 구원을 얻었지만 영웅을 잃었다. 하지만 고담시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평범한 다수다. 영웅이 꼭 있어야만 하는 도시, 외부로부터 언제든지 고립될 수 있는 섬.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처럼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도시는 죽은 사회다.

 

배트맨은 다시 돌아올 것이며, 이후 다크나이트의 시리즈명은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담시에 필요한 것은 다크나이트가 아니라 영웅이 될 수 있는 다수의 '누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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