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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anime

[촌평] 원령공주에서 드러나는 '여성 다시보기'

by FC 2006.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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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꽃이 아닌 당당한 주인공으로서의 강한 “여성”인가, “강한” 여성인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과거의 여성들은 남성의 보조자 또는 남성을 뒷바라지 하는 순응적인 이들로 묘사되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아담이브의 이야기부터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남성 중심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여성은 남성의 부수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게 전해져왔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레이싱 애니메이션 등을 살펴보면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을 뿐이다. 간혹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캔디와 같은 여성다움이라는 하나의 관습적인 선입견을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원령공주의 여성관은 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원령공주에서 자연과 인간의 골격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여성인 ‘산’ 과 ‘에보시’ 이다. 이 두 명의 여자는 자연과 인간의 이성이라는 양면을 서로 대표하고 있다. 즉, 이들은 이 애니메이션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존재해야하는 인물들이라는 말이다. 아시타카도 주인공 급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아시타카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할 뿐, 이 애니메이션의 중심축은 두 명의 여성인 것이다. 즉, 원령공주의 여성관은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여성인가 하는가에 대한 답과 같다.

원령공주의 여주인공인 ‘산’ 은 자신의 아픔 없이 한결같은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신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상처들과 함께 여전사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순수함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의지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 또 다른 여성인 ‘에보시’ 이다. 에보시는 여타의 애니메이션의 악역들처럼 절대 악이 아니라, 인간의 합리주의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연과 대립되는 역할이긴 하지만 인간미를 갖춘 냉철한 여성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성합리주의가 인류에게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의 오류 또한 잘 알고 있는 강인한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령공주의 여성관을 보다 잘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아시타카라는 남자 주인공의 역할이다. 아시타카는 여타의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남자 없이 여주인공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거나, 남자가 여주인공에게 매여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러한 남성은 아니다. 그는 원령공주에서 여성과 동반자로서 등장하는데, 결코 여성보다 우월하다거나 여성보다 열등하다거나 하는 점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여성과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이자 친구로서 등장할 뿐이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신체구조의 차이로 인한 근력의 차이로 보았을 뿐, 그 외에는 동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원령공주처럼 여성이 중심이 되는 애니메이션은 많이 등장한다. 원령공주처럼 동반자의 관계는 아니지만, 그러한 신경향의 애니메이션들은 남성 중심이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과거의 애니메이션과는 성격이 다르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이나 ‘웨딩 피치’ 와 같은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애니메이션에서부터 ‘파이팅 대운동회’ 와 같은 스포츠를 주제로 하는 애니메이션까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강한 여성이 아닌 독자적으로 강한 여성을 나타내는 애니메이션은 점차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멍청한 캐릭터가 등장해서 자빠지거나 실수를 하는 장면을 통해 사람을 웃기려는 것은 정말이지 불쾌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웃음'이란 이런 것이다-예를 들어서 얌전하고 조신한 줄로만 보이던 공주님이 동료가 위기에 처하자 다리를 번쩍 들어 적을 공격함으로써 동료를 지켜낼 때, 우리는 그 의외성과 호탕함을 통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

200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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