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청각보고서/anime

[Review] 인간과 자연은 공존을 논한다, 『원령공주』

by FC 2006. 8. 2.
반응형
모노노케 히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1997 / 일본)
출연 마츠다 요지, 이시다 유리코, 시마모토 스미, 미와 아키히로
상세보기

제목 : 원령공주
(The Princess Mononoke, Mononoke Hime, 1997)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원제 : もののけ 姬
각본 :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저작권 : ⓒ 1997 Nibaraki TNDG
프로듀서 : 토쿠마 야스요시 / 스즈키 토시오
음악 : 히사이시 죠
등급 : 13세 이상 관람가
제작국 : 일본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20세기 미야자키 하야오 최후의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후 작품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등) 은 이전만한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으로 인기는 유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만큼 원령공주는 그래픽, 플롯, 음악, 주제의식 등 모든 부문에서 감히 동시대 최고의 작품이다. 아니 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나는 감히 이 애니메이션을 내가 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중에 최고로 평하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원령공주의 배경은 일본 중세의 무로마치 막부시대이다. 무로마치 시대전국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의 혼란기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원령공주를 이 시기의 역사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고 하였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어느 선에서 조절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혼란스러운 시기와 연결해서 그려낸, 감독의 역량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 애니라고 하겠다.

원령공주의 시작점이 되는 에미시족의 마을에 재앙신이 나타난다. 그는 동물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상당히 징그럽게 생겼으며, 주인공 아시타카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재앙신과 싸우고 팔에 상처를 입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팔의 상처를 고치기 위해 서쪽으로 떠나는 아시타카는 인간의 발전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는 것쯤은 희생할 수 있다는 에보시와 자연을 지키려는 산을 알게 되고, 그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후 죽음의 저주가 풀린 아시타카는 산에게 인간과 함께 살 것을 권하지만 산은 그것을 거절하고 숲으로 돌아간다.

아시타카의 “숲과 타타라 마을이 같이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까?”라는 그의 물음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특히 원령공주는 생태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자연과 문명의 대립체로서 바라보며 개개의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 환경문제를 바라본다. 자연 생태계와 인간 생태계는 전체로서 하나의 생태를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에 참여하고 있는 인간 생태계가 전체에 참여하는 통로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생태주의이다. 환경 그 자체로만 대상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환경주의와 차별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측면은 미야자키 하야오

“인간이 욕심을 가지는 한 자연과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인간은 언젠간 반드시 자연을 파괴할 것이고 그때 가서 그 사실을 자각하더라도 너무 늦은 일이 될 것이다. 수습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자연을 배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세상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인간은 그 세상의 한 구석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라는 말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실현 되었는가? 원령공주는 그러한 물음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원령공주는 공존은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던져준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과 자연은 함께 가야하는 것이지, 따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배제하고 결론 짓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맡겨둠으로써 앞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제시했을 뿐이다.

2006.06.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