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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라는 것이 싫다면, 잔인한 장면이 싫다면 추격자는 최악의 영화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은 다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얽을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 탓이다. 스릴러 영화는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범인을 숨기거나 범인을 보여주거나. 전자의 입장이라면 영화의 초점은 '누구'인지에 맞춰진다. 반면 후자는 영화의 초점을 '과정'에 맞춘다. 추격자는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주는 후자의 영화다. 관객은 범인이 누군지 알아가는 재미 대신, 범인과 범인을 쫓는 이의 대치를 재미요소로 제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찰자적 시선이다. 둘 중 어느 쪽에도 감정을 이입하지 말아야 대립의 각을 살릴 수 있다.
추격자에 나오는 주요 인물은 3가지다. 경찰, 범인, 경찰이었던 사람. 전직경찰에 현직 포주인 김윤석분은 합법적인 신분에서 지하경제로 돈을 벌어들이는 신분이 되었다는 점에서 범인과 경찰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의 관심사는 돈이다. 전직경찰이라는 도덕적이고 인간미를 가졌을 법한 신분이었던 사람이 오히려 돈을 위해 여자를 파는 신분이 되었다는 점은 이 영화 전체에 걸쳐 드러나는 경찰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깔려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설정이다. 반면 범인은 성 불능(인지 단지 성 관련 기능에 결함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의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는 양심이 형성되지 않아서 죄를 짓고도 죄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사람을 말하는데, 솔직하게 내가 죽였다고 말하는 하정우의 모습보다 시장 얼굴에 똥묻힌 걸 덮기 위해 살해동기마저 자의로 써넣는 경찰의 행위가 더 가증스러웠다. 감독은 이런식으로 경찰의 무능과 나태함을 비판한다. 극 중 미진이 탈출해서 신고했을 때 차에서 낮잠에 빠져있던 경찰, 살인이 벌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달려가는 경찰,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의 경찰. 열심히 근무하는 경찰들에게 다소 미안해질 정도로 노골적인 경찰까기는 부담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영화나 책 같은 간접 매체로나 모르는 동네 이야기를 접하는 나에게는 현실이 그런가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추격자의 비극 요소는 형식과 내용에서 하나씩 존재하는데, 내용에서는 극 중 미진의 딸이고 형식에서는 음악이 거의 없거나 음악의 볼륨이 매우 낮게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극 중 미진의 딸은 제법 날카롭고 어른스럽다. 그 아이의 영민함으로 미루어보아 어머니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을텐데, 본인의 믿음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울지도 않고 아이답지 않은 시선으로 관찰한다. 이 아이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짐작만 하고 있던 어머니의 죽음을 거의 확신하게 되는 시점에서 병원에 실려가는 아이다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강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이 강한 모습을 보일 때의 의외성은, 그 강한 사람이 무너질 때 보다 극적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추격자의 음습함은 음악이 거의 없어서 더욱 고조된다. 망치로 때리는 장면, 아이의 발자국소리, 추격씬 등 대부분의 장면에서 급박함을 살려주는 것은 낮은 볼륨의 음악 혹은 제거된 음악이었다. 영화는 음악으로 극적인 상황을 고조시키는데 추격자는 그렇지 않았다. 3인칭 관찰자적 시점은 음악이 없었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고, 영화 내내 메마르고 삭막한 분위기 또한 음악이 없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도 어느 쪽에도 공감을 할 수 없었던 영화였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비인간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목적이 돈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병원에 입원한 미진의 딸의 아버지냐고 묻는 간호사의 말에 말없이 본인의 사인을 한 김윤석, 굳어가는 미진의 피와 뚝뚝 흘러내리는 김윤석의 땀에서 전해오는 안타까움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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