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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books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by FC 2009.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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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주노 디아스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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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지런한 거에 알레르기가 있나봐."
"하, 너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시도하는 데 알레르기가 있는거야."

"전부 같은 배구팀으로 키가 크고 늘씬했다. 이 여자들이 달리기를 할 때면 자살 테러리스트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황홀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벨리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저준위 우라늄이었던 자신의 지난날로부터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정제해 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잊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새 시대의 특권이 구세대의 맹세를 부적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업무'에서 돌아온 그에게선 늘 줄담배와 묵은 공포의 냄새가 났다."

"드디어 평화로운 목가적 보호 서클이 깨지고 현실세계의 문제들이 달려들어왔다."

"라 페아는 그보다 열일곱 살이나 많은 독살스러운 자린고비였다."

"승려처럼 침착했다."

"가장 너그럽다는 자들의 너그러움이 얼마나 얄팍한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지 않은가."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정말 충분치 않았던건 의지였다."


날카롭다고 순화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은 굉장히 적나라하게 발가벗기는 문장들로 가득한 글. 중남미 출신이라 그런지 나는 그 상황을 알듯 말듯 했다. 독재자의 치하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순응하는 이들에게는 공감도 갔고, 한편으로는 양지의 성생활, 그러니까 좀 더 적나라한 성생활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고.

그러나 이 작가는 내용의 진정한 공감보다 캐릭터의 매력으로 사로잡는 방식을 택한다. 따지고 보면 내용은 도미니카인의 '푸쿠'를 주 맥락으로 한, 어떤 한 가족집단의 이야기다. 다만 매력적인 캐릭터가 가족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아! 오스카는 왜 그리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냐, 한다면 그건 오스카가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를 향한 본능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그 한가지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니. 그 짧은 삶동안 놀랍게도 여자 하나만 바라보며 살 수 있다니. 감동적인 것은 여자라는 생물을 향했던 오스카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는 숱하게도 들어보았지만, 그 클리셰는 오스카에게만은 예외였던 것 같다.

과연 '놀라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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