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묘한 관계의 시작은 『Isabella』

이사벨라 감독 팡호청 (2006 / 홍콩) 출연 두문택, 이사벨라 롱, 황추생, 여문락 상세보기

이사벨라 (伊莎貝拉: Isabella, 2006)
   
원제 : 이사패랍(伊莎貝拉)
감독 : 팡호청 
출연 : 두문택(싱), Isabella Leong(얀)  
국내 등급 :  15세 관람가
공식홈 : http://www.isabella2006.co.kr/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과 부천 국제영화제의 폐막작. 너는 찍고 나는 쏘고로 국내에도 낯설지 않은 팡호청 감독의 감성작이다. 국내에서는 그리 히트하지 못한 예술영화였지만, 차후 재개봉까지 하며 좋은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줄거리 대신 영화제의 소개글을 차용한다.

1999년,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마카오의 여름. 범죄에 연루돼 정직 처분을 받은 경찰 싱은 어느 날 요정같은 소녀 얀을 만나게 된다. 원나잇스탠드 상대로만 여겼던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며 돈을 요구하자 어리둥절해진 싱은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자책감에 빠지게 되고, 얀은 어머니가 죽은 후 애지중지 하면서 키우던 개 이사벨라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이사벨라는 싱이 어릴 적 사랑했던 첫 사랑의 이름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싱과 얀은 동거를 하며 잃어버린 개를 찾아가는 동안 점차 서로에 대해 불안정했던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데...

이 영화의 제목이자 얀을 연기한 양락시(梁洛施)의 영어 이름인 Isabella 는 스페인어로 '신의 약속'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이 영화의 키워드이다.

이사벨라는 싱과 얀을 이어주는 가교이며 여주인공 얀의 과거이다. 얀은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싱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고리인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다. 그래서 그를 대신하는 것이 '살아있다고 믿어지는' 강아지 '이사벨라'인 것이다. 물론 이 강아지는 나중에 실제로 살아있음이 밝혀진다. 어머니가 병으로 위태할 때 사준 강아지에게 어머니의 처녀적 이름을 붙여 그녀와의 접점을 잃고 싶지 않은 순수한 소녀 얀과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중년 남자 싱은 '이사벨라'에 의해 마음의 문을 연다. 여기서 싱의 첫사랑은 얀의 어머니 '이사벨라' 이다. 어쩌면 '신의 약속'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영화의 제목으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이들의 만남이 마치 신의 약속과도 같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싱 역의 두문택은 역시나 그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반환기의 부도덕한 마카오 경찰과 아버지로서의 자책감을 그는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Isabella Leong 역시 순수한 소녀 얀의 역할을 100% 표현해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그녀가 아니라면 이 역할을 과연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8세 배우인 Isabella Leong의 연기는 뛰어났다. 아버지의 문란한 성생활을 목격하고도 천진한 눈으로 라면을 먹는 장면이라던가, 강아지를 찾아 울부짖는 모습, 술마시는 장면 등은 이 어린 소녀의 연기에 대한 재능을 무궁무진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훌륭한 씬이었다.

중간중간 삽입된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장면들은 싱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으며, 마카오 반환 당시 포르투갈과 마카오의 정치 상황을 암암리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마카오 반환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는 장면들은 가끔 이루어지는 싱과 동료 경찰의 만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년의 부도덕한 경찰과 더이상은 잃을 것이 없는 순수한 소녀의 만남은 굉장히 언밸런스 하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준다. 언제든 서로의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른함과 동시에 약해지더라도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질김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 독특한 이질감은 한 곡의 BGM처럼 영화의 내면을 흐르고 있지만, 결코 그 존재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잘 보이지 않지만 잘 끊어지지도 않는 낚싯줄처럼 그들의 연은 맞닿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