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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comics

플루토

by FC 201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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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URASAWA NAOKI (서울문화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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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원성을 지향하고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창하지만 사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링컨의 노예해방은 아직 200년이 지나지 않았고 아파르트헤이트의 '명목상' 종결은 또한 이제 20년 째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성을 짓밟는 행위 - 인종차별, 남녀차별, 동물학대, 환경파괴 등 - 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유리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백인-흑인, 황인. 남자-여자. 플루토에서는 이 지독하게 유서 깊은, 하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구도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로봇.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기계의 편리함과 우수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우리에게 로봇은 더이상 공상과학속의 산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실용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존재라는 얘기다.

플루토는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이 걸작만화에서의 로봇은 이방인이다. 이방인에게 느끼는 낯선 감정과 '인간이 만들었다는' 우월감은 로봇을 끝내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KKK단을 본 딴 KR단, 로봇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표현한 대사 등은 흡사 과거의 '노예'나 '유색인종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 전제정치의 궁극에 서있던 고대 페르시아 '제국'과 '뉴워싱턴'을 수도로 하는 왕자 트라시아'합중국'.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과오를 개정할 자정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역사속에서 한 때 세계를 제패하고 군림하던 두 국가 모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플루토 작가는 독존은 공존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보다 정확하고 이성적인 로봇이 감정을 획득하는 순간, '인간미'를 얻는 순간은 결국 마른 사막에 꽃을 피우는 결과를 낳는다. 로봇이 눈물을 흘릴 때, 인간이 로봇과의 공존을 가능케 할 때,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제조'된 로봇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진정한 공존은 '다름'을 감성의 영역에서도 포용할 줄 아는 것이다. 플루토의 지구는 이제 막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로봇도 품어안을 수 있는 휴머니즘의 첫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희생한 7대의 로봇을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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