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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Documentary

잘 익힌 감성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by FC 200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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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얼음 왕국의 마지막 사냥꾼, 2부 얼음없는 북극, 3부 해빙, 사라지는 툰드라다. 각각 인간과 자연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보여주지만, 1부라고 해서 자연에 소홀하지 않고 2부라고 해서 인간에 소홀하지는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1부는 주로 북극과 그린란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로알 아문센의 이야기에서나 상상해야했던 개썰매나 이누이트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도구들(작살 등)을 어떻게 누구에게 사용하는지를 보는 것은 내가 그 안의 직접 관찰자가 되는 것만 같다.


2부는 북극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 변화가 북극의 인간과 동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녹아버린 만년설. 만년설이 사라진 북극은 생경하지만 위험하게 다가온다.


3부는 녹는 툰드라의 생태와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만 했는지, 혹은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 그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북극의 눈물은 Showing과 Telling을 영리하게 조합한 다큐멘터리로, 북극의 인간, 동물, 자연을 계절과 목적에 따라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북극의 생물에 대한 설명, 북극에 사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북극의 아름다운 자연을 멀리서 조망하는 것은 기본이다. 배우 안성기씨의 친근한 내레이션이 다큐를 이끌어가는 큰 줄기인데, 전문 성우가 아닌 영화배우의 내레이션은 신선함이 우러나오는 효과 외에도 다듬어지지 않은 '덜 정석적'인 면이 다큐멘터리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다큐멘터리는 문장이나 방송 또는 영상매체를 활용하여 제작 또는 구성한 주제와 줄거리가 있는 기록물이다. 그런데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와 줄거리가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재구성한 사실의 유기적인 연결'이다. 즉, 사실을 온전하게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북극의 눈물 역시 그러한 의도한 줄거리의 틀을 깨지 않고 전개된다.

1부나 2부나 3부나 기본 골격은 이렇다.

전경을 잡으며 도입 → 북극의 생물 한 마리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1부는 북극곰, 2부는 바다표범 등) → 이들의 생태에서 자연스럽게 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 생태의 변화로 주제를 옮겨감→ 북극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변화를 직접 들음→북극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줌. (2부에서는 96년과의 비교를 통해 북극의 변화를 부각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북극의 눈물은 늘 멀리서 북극의 전경을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북극의 아름다움과 북극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 외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HD의 위력은 이런 데서 드러나는 거니까.


그리고 북극곰이나 바다표범 같은 이들의 생태를 보여준다. 사냥하는 장면이라던가, 휴식하는 장면이라던가.
이러한 동물을 찍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문제의식보다 정보전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필수적이면서도 그들을 끝까지 잡아두게 할 수 있는 요소다.


수중촬영은 음악의 삽입 없이 있는 그대로를 고속촬영(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고속촬영이라고 판단했다.)으로 보여주는데 마치 바다표범의 생태가 여과없이 전달되어와 감동이었다.


공중촬영이 아니면 잡아낼 수 없었던 장면들. 기러기의 이동을 위에서 보는 장면, 순록의 대이동.



다큐멘터리의 극적인 긴장감은 대부분 '누군가의 죽음'으로 만들어진다. 북극의 눈물은 그 죽음의 포인트를 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이 무너져 죽어간 인간과 얼음이 녹아 더이상 살 수 없는 동물의 2가지 측면에서 보여준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경각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컴퓨터 그래픽 화면의 삽입은 당연한 수순이다.


북극의 눈물이 담고 있는 정서는 '잔잔한 슬픔' 이다. 잃어버린 것, 잃어버릴 것이 만들어낸 변화의 아련함을 담은 내레이션이 폐부 깊숙히 파고든다. 그래서 북극의 눈물이 슬프게 다가오는 것일게다.

자연이나 인간 둘 중 하나만 보여주었다면 자칫 지루할 수 있었을텐데, 인간과 자연의 조합은 늘 그렇듯 환상적이다. 자연에서 문제의식을 찾고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변화를 통해 심금을 울리는 방식은 사실 단순하지만 북극의 눈물의 여과없는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극적이다.

중간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들려주는 문제의식은 충분한 화면을 통해 먼저 전달했기에 과하지 않다. '온난화 막아야돼!!!' 하는 것보다 '온난화로 인한 실상'을 보여주면서 나직하게 '이런 변화는 시작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는 것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북극의 눈물은 감성적이고 말랑말랑하다. 인간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하는 것은 늘 이성보다는 감성의 몫이었다. 북극의 눈물은 그런 인간의 감성코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살짝 찌르고 빠질 줄 아는 다큐멘터리다. 감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적당한 균형이야말로 북극의 눈물이 명품 다큐멘터리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지. 이런 명품 다큐가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주길 바라면서, 방송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명품 다큐의 세계화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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