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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윤정pd 의 연출을 좋아한다. 밝은 드라마, 캐릭터에 대한 긍정이 보여서라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좀 더 취향에 가까운 것은 한 폭의 일러스트처럼 담아내는 구도 탓이다.
왜 굳이 우는 이하나를 저런 구도로 보여줘야만 했을까. 클로즈업 했어도 이하나의 당시 감정은 충분히 와닿았을텐데. 나는 이 연출을 소녀적 감성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하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은 더욱 극적이다. 애틋한 마음을 갖고 떠나는 남자의 차와 그 자리에 남아 멍하니 눈물을 흘리는 여자. 만화같은 구도에 가슴 한 편에 간직하고 있는 소녀적 감수성이 깨어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도 같이 땅을 파지 않을 수 있는 건, 환히 켜진 가로등과 현관의 백열등 탓이다. 이건 분명 슬퍼야만 하는 상황인데 내 가슴을 같이 쥐어짜지는 않는다. 왜냐면 너무나도 밝다. 밤인데도 밝다.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 다소 우울한 상황임에도 주변이 환하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우울함이 진짜 함께 슬퍼해야할 것이라기보다는 밝은 내일의 전주곡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같이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다.
보통 차에 탄 장면은 정면이나 바로 옆에서 근접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는 뒤에서 앞을 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이정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차 한가운데에 달려있는 거울을 통해서 뿐이다. 거울을 통해 보는 이정재는 거울이라는 물체를 한번 더 통한 간접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을 통해 언뜻 보이는 이정재의 얼굴과 민효린의 대사를 통해 그의 심정을 짐작한다, 마치 소설 속 한 장면을 상상하는 것처럼. 이상은 거울 속의 나는 나와 반대지만 꽤 닮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거울 속의 남자를 통해 우린 남자의 변화를 상상할 수 있는 거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로 둘만의 어떤 공간을 보여주기에 이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 주로 이런 구도는 추격전의 전조에 쓰이지만 로맨스물에도 매우 잘 어울린다. 때로는 전부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직접적으로 나는 너를 좋아해, 보다는 꽃 한 송이 건네면서 얼굴을 붉히는 것이 더 어필할 수 있는 것처럼.
소녀적인 감수성을 건드릴만한 장치들.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는 장치들.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간접적인 여백의 미. 나는 이런 것들 때문에 이윤정pd의 연출을 좋아한다. 그리고 많이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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