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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보고서/movie

잘 버무려 놓은 짬뽕 샐러드, 『세븐데이즈』

by FC 200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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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데이즈
감독 원신연 (2007 / 한국)
출연 김윤진, 김미숙, 박희순, 이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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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변호사이며 눈 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딸을 향한 마음은 다른 어떤 어머니들에 못지 않지만, 마음만큼 딸을 신경써주지는 못하는 엄마다.

영화는 여느 유괴 영화와는 크게 다르지 않게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던 시절, 나중에 후회할법한 일들을 몇 개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도입 부분의 구성을 놓고 본다면 유괴 영화 그 놈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7일의 짧은 시간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은 미국 드라마 24가 하루를 시간대별로 나누어서 에피소드를 제작한 것과 비슷하고, 전형적인 유괴극의 도입부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참신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만의 특징은 변호사라는 특수한 직업을, 그 직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범죄의 상황 안에 직접 끌어들였고, 단지 유괴극이라는 설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관객을 몰입시킬만한 또다른 흥미 요소를 첨가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잘 버무린 샐러드와 같다는 애기다.

생각해보라. 영화는 플롯의 완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전개 방식을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딸과의 일상(후에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하는 부분.) → 일상의 붕괴 → 범인의 등장 및 요구 → 한 두 차례 범인 관련 인물 및 범인과의 조우 → 새로운 증거와 정황의 등장 → 법정 공방 → 주인공의 위기 → 극적인 해결 → 반전, 그 후.

모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거에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신경써주지 못한 부분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어머니의 사랑 방식이 완전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책하고 후회하는 어머니,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에 울부짖는 어머니상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좁게 보면 이 영화는 불완전했던 일상이 완전해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 외의 흐름은 여느 반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는 이런 종류의 수사극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과정이 있어야 차후 반전에서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들어간 장면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법정에서의 통쾌함, 범죄 영화에서 빠져서는 안될 반전과 적절한 호기심의 유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절박함, 우정에 불타는 열혈 친구, 배신과 뒷 세계의 조직까지. 이만하면 흥미를 돋굴만한 요소는 전부 가져다 쓴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꿰어맞추기를 잘해야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의 감독은 그런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잘린 손목 모형과 스테이크집에서의 일화, 우연이면 우연이랄 수 있겠지만 시기 적절하게 발견되는 증거들은 우연성보다는 개연성에 점수를 더 주고 싶을 정도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발견되어 플롯의 치밀함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울부짖는 어머니, 그리움에 사무친 어머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어머니, 이게 지난 역사 동안 우리가 봐온 어머니상, 아니 피로 이어진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어머니만이 가진, 어머니여야만 연기할 수 있는 모성은 배우들의 제법 완숙한 연기력과 어우러져 이 영화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스피디하고 환각적인 영상미와 적절한 타이밍에 오싹하게 만들어주는 음악 역시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며, 모든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부분부분 끊어서 보여준 연출 역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고 범인은 누구인지 직접 추리하게 만드는 좋은 장치다.

범죄의 재구성 이후로 오랜만에 본 잘 만들어진 플롯의 한국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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