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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하는 썰/Dreaming

관계

by FC 201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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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접속>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한석규는 전도연에게 pc통신으로 편지를 보낸다. 그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관계를 맺는 방식은 pc통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 12년쯤 전에는 <동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유지태는 무선 통신 통해 21년 전,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 김하늘과 교신을 한다. 유지태가 김하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무선 통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

 

관계를 맺는 방식은 소통하는 방식이다. 아기는 처음 주위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그리고 천천히 부모님, 가족, 주위의 낯선 물건들을 기억 속에 새겨 넣는다. 울음과 표정, 눈빛 같은 것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나간다.

 

소셜네트워크의 시대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삼백만을 넘어선지는 오래고, 아이폰 신형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스마트하게 세상과 연결된 시대가 되었다. 이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하나면 지구 반대편의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똑같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지만, 아기는 자신을 둘러싼 것만 볼 수 있었던 수동적 관계라면 스마트폰 시대의 우리는 능동적으로 새로운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수동적인 관계여야 하는 아기와 능동적일 수 있는 우리의 관계맺기는 별 차이가 없다. 소셜네트워크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세상을 바꾸어버릴 것인 양, 전 세계의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처럼 부풀려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소셜네트워크는 아기의 세상처럼 그들만의 리그다. 디지털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과의 관계는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애초부터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자들의 전유물인 것이다. 시장에서는 그런 이들을 흡수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 서적을 출판하고, 새로운 기기를 선보이지만 이 또한 있는 자의 전유물일 뿐이다. 아기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바일 기기나 랜선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셜네트워크로 인해 보다 거대해진 관계맺기 열풍을 보면서 그 열풍에 동참하지 못하는 세대를 생각해 본다. 하루 먹고 하루 살기에 바빠 미처 새로운 시대를 돌아보기 어려운 이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과 직접 대화를 시도한다. pc통신, 인터넷, 모바일 기기 그 어느 것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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