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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하는 썰/Dreaming

갈증

by FC 201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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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목이 마른 사슴처럼 나의 그녀를 찾는다. 이른 낮에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면 한강물이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 때마다 낭만을 꿈꾸곤 했다. ! !!! !!!!! 나의 그녀는 어디에 계신가요? 나는 독실한 척 하는 종교인이다. 25년 모태솔로로 지내온 나의 마지막 지푸라기는 바로 종교였던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그랬다. 교회오빠가 되라고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나는 그렇게 군대에 갔다. 2년 동안 남자만 보고 지내다가 복학을 하려니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교회오빠보다는 귀여운 신입생의 로망인 선배가 되고 싶다. 그렇다. 여태까지 꿈일 뿐이지만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왜냐고? 안선생님은 말했다. 포기하는 순간 시합 종료라고. 내가 포기하는 순간 나는 독거노인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포기할 수 없다.

 

타는 목마름으로,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오늘도 역시 아무 일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예감이 좋다. 어차피 예감이니까 불길한 생각은 안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무심코 학교를 향해 올라가던 나는 바로 눈앞에서 번개가 번쩍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오마이갓.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매일같이 눈에 힘 잔뜩 주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교회오빠가 되기 위해 교회에 간 것이 아니다. 오늘을 위해 교회에 갔고, 그 보답을 받은 것이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가느다란 허리, 170 정도 되어보이는 키.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키를 겨우 0.2센티미터 초과하는 나로서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괜찮다. 뒷태가 예술이지 않은가. 나는 순간 짐승이 된 자신을 자책하며 침을 꿀떡 삼켰다. 이제 목은 마르지 않았다. 행동하는 자, 승리하리라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제 행동하여 승리하는 자가 되어볼 참이다.

 

뒤에서 얼핏 봤는데 선글라스를 낀 것 같다. 그 선글라스가 태양빛을 한번 받아 번쩍일 때마다 나는 반짝이는 한강물을 떠올렸다. 빨라지는 내 심장박동수만큼 걸음도 조금씩 빨라졌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써놓으니 내가 좀 과감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남자다. 그 남자가 용기를 내고 있다.

 

100미터, 50미터, 30미터., 7미터, 1미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바람이 불었고, 그녀의 찰랑거리는 머리가 내 얼굴을 스쳤다. 이 얼마나 드라마 같은 순간인가! 이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심지어 라임마저도 끝내주는 나의 오늘인 것이다.

 

넌 누구야, 게이새끼도 아니고.

 

나는 그녀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딱 붙는 청바지 안쪽에 곱게 접혀 들어가있는, 가슴팍을 풀어헤친 남방.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앞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허스키.. 그래 허스키하다고 해두자. 선이 굵은 남자의 목소리, 훤하게 보이는 가슴팍, 그리고 목젖.

 

벙찐 정신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수고하세요.”

 

정말 끝내주는 오늘이다. 다시금 목이 마른 것 같다. 이번에는 웬만한 음료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안경을 맞추는 게 어떻겠냐던 누나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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