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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사회에서 관계를 형성한다는 존 롤스의 말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무인도에서 16년을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관계를 맺고,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관계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의도적으로 단절되지 않는 이상 삶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된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떤 집단에 속해서 어떤 사람과 소통하는지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아이폰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폰 역시 이러한 관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시대에서 개인의 파편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스마트폰과 바로 연동이 되는 트위터만 봐도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140자의 단문만을 전송할 수 있는 트위터의 특성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원하는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본인이 공유하고자 하는 것만을 공유하며, 본인이 원하는 사람만을 선택하여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싸이월드의 일촌맺기, 트위터의 protect, 페이스북의 친구공개 등은 이러한 경향을 심화시킨다. 즉, 포장하고 선택한 관계를 제외한 관계들은 애초에 배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제된 인간관계는 보다 심각한 인간의 소외와 소통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직접적인 접촉이 줄어들면서 '인맥'과 '친구'의 경계는 더욱 더 선명해졌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만 지우고 메신저의 주소를 바꾸기만 해도 인간관계의 단절은 충분히 가능하다. SNS의 시대에는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닫혀버린 미니홈피를 본다는 모 광고의 카피처럼, 클릭 몇 번만으로 인간관계의 배제와 소통의 단절이 가능해진다. 필요에 의해 선택하고 버리는 비인간적인 행태가 스마트폰을 통해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외된 인간, 소통의 단절은 폭력이나 자살 등의 형태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스마트폰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효용은 산술적인 숫자에 그치게 된다.
개인의 효용을 위한 스마트폰이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단순한 소통의 양이 늘어나는 것만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통의 폭을 증대시키는 방향을 고려해야한다. 이를테면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열린 공간이니만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스마트폰과 트위터다. 스마트폰이 디지털 코쿠닝의 촉매가 될지 피상적 인간관계를 넘어선 진정한 소통의 도구로 거듭날지는 이 문명의 이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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